공사비를 절감하려면

프리콘

발주자는 싸고 좋은 건축물을 원한다

일반적으로 발주자는 싸고 좋은 건축물을 원하지만, 보통의 경우에 싸고 좋은 건축물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싼 게 비지떡이고 건설 선진국에서는 국가 방침으로 싼 업체를 선정하지 말라는 조달 지침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비싸게 짓는 것에 끝이 없듯이 싸게 짓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상가의 평당 건설비가 600~700만 원이라고 하면, 세계적인 명품 회사 쇼룸은 평당 3,000만 원, 5,000만 원까지도 투자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단가 차이는 그 건축물이 갖는 성격에 주로 좌우되고 발주자의 의지에 맞춰 설계에 마감 공사와 시방이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평당 5,000만 원짜리 명품 샵은 층고도 높고 각종 인테리어 자재나 조명 등도 최고급을 쓰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일반 상가가 평당 600~700만 원이라고 하지만 평당 300~400만 원으로 공사를 완료할 수도 있다. 특수한 지역에서 반값아파트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례와 증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 한 예를 들어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 면적 85㎡ 강남의 아파트는 분양가가 최고 평당 4,900만원이었고, 시가 1억 원을 돌파한 아파트 사례도 있지만 아직도 강원도나 전라남도는 평당 시세가 700만원 수준으로 약 2억 원이면 같은 규모의 아파트 한 채를 구할 수 있다. 단위 평당 비교하면 15배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의 주요 원인은 토지가에 있으나 설계와 품질 수준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설계에 따라 건설비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비싼 설계는 잘하지만 싼 설계는 잘하지 못하고, 발주자조차 그런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국내 건축비가 세계적으로 비싼 이유는,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나 까르푸와 같은 설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발주자가 경제적 건축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고, 설계와 건설 관련자의 치열한 원가 절감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국내 아파트 가격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다. 지가 문제가 연동되긴 하지만, 서민들에게 싼 가격으로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생각은 뒷전이고 어떻게 하면 개발업체와 건설업체가 더 많은 돈을 받을 지만 지속적으로 추구한 결과다. 당연히 공기를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공사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려는 시도는 부족했고, 설계업체도 별다른 의식 없이 이들의 지시에 순응해온 결과이다. 물론 고급 아파트도 필요하지만 지금 아파트 반값 수준의 아파트도 존재해야 하며, 이는 택지를 싸게 공급하는 동시에 혁신적인 원가 절감 노력을 기울인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설계할 때에 반드시 필요한 기법인 목표 공사비 설계 기법이 필요하고 철저한 공사비 관리가 필수적이다.

유통 구조가 중요하다

건설 관련법 상에는 1차 하도급까지만 적법이고 2차 하도급부터는 불법이다. 하지만 전국 어디든 2차, 3차 하도급을 하지 않는 건설 현장은 하나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재하도급이 불법이 아니긴 하지만, 게시판에 1차부터 6차 하도급 책임자까지 연락처가 버젓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중층 하도급 때문에 일본의 거설 단가는 매우 비싸고 해외 공사에서도 경쟁력이 없다. 국내에서는 몇 차 하도급까지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실태가 조사된 적은 없지만, 2차, 3차 하도급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국내에서는 몇 차의 하도급이든지 마지막에는 대부분 소위 작업반(팀)이라는 최종 도급 단위가 인력을 몇 명에서 몇 십 명을 고용하여, 이들이 공사를 담당한다. 실제 공사 주체인 이들은 노출되지 않고 숨어 있기 때문에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데 된다. 따라서 원가 문제뿐만 아니라 안전ㆍ품질 관리 문제도 이들로부터 발생된다.

사업비 관리의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시공 단계에 치우친 원가 관리에서 벗어나 프리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설계안에 대한 비용을 고려하고 사업성과 시공성을 반영한 설계안을 제시할 수 있는 선진화된 사업비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사업비 관리의 중요성에 상당히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영국 건설 시스템의 영향을 받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원가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고, 중국에서 조차 원가 관리자(QS, Quantity Surveyor)는 전문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사업비 관리의 선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PM/CM 용역에 애매하게 원가 관리 역할이 부여되고 있는 부분을 개선하여, 건설 선진국 같이 원가 관리 용역을 별도로 발주하는 제도적 개혁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건축이야기—요른 웃손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레드북 발표 이후 웃손은 2년 동안 설계를 발전시키면서 도면과 모델 이미지, 스케치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며 자신의 안을 구체화했다. 당시 빠른 착공을 위해 이른바 ‘패스트트랙’ 방식으로 3단계 공사가 진행됐다. 1단계 기초 및 토대 공사, 2단계 셸 모양의 지붕 구조체를 만들고 타일을 붙이는 공사, 3단계 벽체와 내부 공사로 나눠 설계를 부분적으로 완성해 가기로 했다. 그러나 설계와 시공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오류와 시행착오가 많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공사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초기에 예상했던 예산 700만 호주달러로는 어림도 없었다. 준공 이후 1974년 호주 정부가 공식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공사에 들어간 총 비용은 1억 200만 호주달러였다. 당초 예산 대비 15배 정도로 비용이 늘어난 셈이다. 공사 기간은 당초 계획보다 6년이나 늘어났다.

공사 기간과 예산이 엄청나게 초과된 이 프로젝트는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보자면 실패작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실패 사례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어떻게 하면 당초 세웠던 일정과 예산을 준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으로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기법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오베 아룹은 구조 설계와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탁월한 회사로 성장했고, 현재 37개국에 17,000여 명의 인원을 거느린 회사가 되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의 성패에 따라 예산과 공기가 대폭 증가할 수도 있고 절감도 가능하다는 산 교훈을 제공한 프로젝트였다. 2007년에는 현대 건축물로는 이례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으며, 2013년 기준으로 누적 1억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해 총 공사비의 몇 배의 수익을 올렸고, 현재에도 해마다 1천만 명이상이 방문하는 시드니의 랜드마크로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월등한 설계를 바탕으로, 사업 관리 측면에서 대표적인 실패작이라도 장기적으로는 사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패러독스를 제공한 프로젝트였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