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좋은 설계-하드웨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프리콘

설계는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다

발주자를 비롯한 프로젝트 관련자들이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하지만 그 결과는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프로젝트 실패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설계 문제로 인한 실패가 많으며 설계의 핵심 부분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거나 오류를 일으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보다 적은 사업비로 더 짧은 기간 내에 최고의 품질과 디자인을 갖춘 건축물을 완성시키는 것은 모든 건설 프로젝트의 발주자가 원하는 바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과는 다르게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설레고 행복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내 집이나 내 건물을 짓는 일’은 어느새 골칫거리로 변해버리고는 한다.

흔한 발주자의 고민

  • 당초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져서 규모가 바뀌고 변경도 많았다.
  • 결국 설계 기간이 길어졌다.
  • 디자인과 기능 중심으로 시설물과 자재를 설계하였더니,
  • 목표보다 공사비가 높아졌다.
  • 천정도 높고 기둥이 없는 대규모 공간을 계획했는데,
  • 예상보다 공사기간이 길어지고 공사비도 초과했다.
  • 마지막에 인테리어 디자인이 변경되어 수정 공사를 하는 바람에,
  • 준공 일정이 3개월 지연됐다.
  • 외벽 디자인이 아름다운 것은 좋았는데 냉난방을 위한
  • 에너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되는 하소연이다. 아마도 이러한 고민은 특정 발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긴 역사를 거치면서 건축 관련 기술은 상상 이상으로 개발되어 왔고 수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데도, 왜 여전히 똑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는 걸까?

건설에서 설계는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 중 하나다. 대규모 프로젝트의 공정표를 공정 소프트웨어로 작성하면 수만 가지 활동이 존재한다. 이것은 달리 이야기하면 의사 결정의 가짓수가 수만 건 있다는 뜻이다. 큰 의사 결정으로 평면도와 입면도, 건물 외관 등이 있고, 평면도 중에서도 엘리베이터는 몇 대를 어디에 둘 것이며, 어느 회사 제품을 쓰고 색상은 어떻게 하고, 엘리베이터 내부 인테리어는 어떻게 하고, 운영 시스템은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 등 거의 모든 디테일이 설계와 연관되어 있다. 화장실만 놓고 보더라도 화장실 사이즈, 변기, 세면대 배열, 타일 등 마감 재료, 색상, 사이즈, 그밖에 액세서리 등등 화장실에 관한 의사 결정만 수백 가지가 넘을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설계와 연관되어 있으며 시방서에 언급된다.

건설은 끊임없는 의사 결정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각종 크고 작은 의사 결정의 중심에는 설계도와 시방서가 있으며, 이것을 만드는 사람이 설계자이다.

말레이시아 KLCC 프로젝트 사례를 살펴보면, 이 프로젝트는 시공 당시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이었는데 공기는 27.5개월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설계자와 CM 업체는 설계 단시에 여러 가지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이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말레이시아 현지 사정을 감안하고 공사비 측면을 최대로 고려한 최적의 구조 시스템을 도입하여 도면화하였다. 특이한 점은 이 건물이 콘크리트와 철골의 복합 구조(수직제는 콘크리트, 수평제는 철골 구조)였는데, 전체 공기 27.5개월을 달성하려면 층당 4일 주기로 시공해야 하는 것이 설계 단계부터 검토되었다. 따라서 구조 설계 도면과 시방서에는 층당 4일 주기 공정의 상세한 지침이 나와 있었다. 시공업체는 설계업체가 제시한 지침을 충실히 따르면 되었다. 제대로 된 설계는 이와 같이 설계 당시부터 공법이나 건설 원가가 치밀하게 검토되어 도면화된다.

좋은 설계는 하드웨어인 건설 공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발주자, 시공자, 사용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좋은 설계는 발주자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고, 발주자의 건축 의도를 실제로 구현한다. 좋은 설계는 건설비를 줄일 수 있고, 시공성을 고려하여 시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시켜 준다. 좋은 설계는 지역이나 도시의 경쟁력을 올리고 사용자를 고려한 설계를 제공하고, 지역 사회와의 조화를 통해 지역 환경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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