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콘
한국의 최고 경영자들이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 할 때 흔히 보이는 성향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① 자기 자신의 조직을 두고 싶어 한다. ② 전문성이나 투명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인력을 채용하여 발주자 역할을 시킨다. ③ 프로젝트에 깊이 개입하기를 좋아하고 일부 특별한 발주자는 절대 군주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밑에서 “NO”라고 하기 힘들다. ④ 저가 발주를 선호한다. 저가라도 계약을 발주자에게 유리하게 하고 밀어붙이면 프로젝트의 성공에 별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⑤ 일부 최고 경영자들은 건설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밑의 책임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들은 모두 프로젝트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잘못된 방향성을 가진 발주자라고 판단된다.
이제 건설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발주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로 다시 돌아와 보자. 거듭 이야기하고 있지만 건설 시장에서 발주자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발주자는 건설 프로젝트를 만들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업체 선정에도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규모 건설 물량을 발주하는 공공 발주자의 시장 지배력은 엄청나고 막강하다.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발주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는 불공정한 관행이다. ‘갑’과 ‘을’의 주종 관계에서 벗어나 동등한 계약 주체로서 상생하는 문화가 형성될 때 비로소 건전한 건설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 발주자의 귀책사유임에도 설계 변경에 대한 계약 금액 조정을 인정하지 않거나 발주자의 추가 공사 지시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주체들은 사기가 꺾일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해 프로젝트에 임할 필요성마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심각해지면, 시공사들은 발주자로 인해 손해를 본 만큼 다른 부분에서 품질을 떨어뜨리거나 하도급 업체에 피해를 전가시키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그저 나쁜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라는 경구는 다시 새겨볼 만하다.
- 비현실적이거나 불명확한 사업 내용, 범위, 예산, 기간 등
- 사업 기획 및 설계의 지연
- 설계 및 시공 단계에서의 사업 범위 및 예산의 변경
- 프로젝트 참여자 간 협력 관계 구축 실패
- 부적합한 설계자, 엔지니어, 시공자 선정
- 설계 착오 및 누락
- 설계 및 조달 지연에 따른 적시 시공 불가
-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 실패
- 잦은 설계 변경
- 최저가 위주의 낙찰자 선정
발주자가 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일은 주된 의사결정을 미루는 일이다. 설계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할 주요 의사 결정을 시공 단계로 미룸으로써 시공업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관행은 반드시 고쳐져야 할 부분이다. 프로젝트 초기에 제때 이루지지 않은 의사결정이 프로젝트 후반부에 가서 엄청난 손실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발주자가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에 사사건건 관여하면 오히려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물론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주체가 발주자이기도 하지만, 발주자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중요한 의사 결정의 순간에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발주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오만이나 자만이다. 그간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성과가 좋지 않은 프로젝트의 공통된 특징은 발주자의 오만이 주요 이유였다.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없이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발주자의 건설 사업은 성공하기 힘들었다.
개발 사업은 물론이고 건설에도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해외 출장과 많은 업체, 전문가를 만나면서 피상적으로나마 자기 사업에 관한 지식을 쌓았다. 그러면서 날이 갈수록 교만해졌고, 주위 전문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부 담당자 책임자를 바른 말을 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교체하였다. 무엇보다도 큰 잘못은 자신이 전문가라고 착각하고 자기주장과 아집이 점점 심해지면서 결국 잘 못된 결정을 반복했다. 프로젝트는 그런대로 마무리되었으나 사업적으로는 참혹한 실패를 경험했다. 발주자의 자만이 낳은 결과로, 겸손이야말로 모든 분야에서 빠질 수 없는 덕목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뼈아픈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