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콘
하나. 발주자-프로젝트 성공의 바로미터
프로젝트에서 발주자의 역할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다”라는 말은 “건축은 건축주의 거울이다”라는 말로도 바꿔볼 수 있겠다. 건축물은 그 주인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역량, 생각대로 지어진다는 뜻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하고 훌륭한 건축물 뒤에는 반드시 그 건축물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건축주, 다시 말해 발주자가 있었다. 실제로 건축 활동에 있어서 발주자의 역할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막중하다.
건축물의 기획과 설계 단계에서부터 발주 단계, 시공 단계에 이르기까지 전체 건설 생산 과정에서 최종 의사 결정의 주체는 항상 발주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발주자가 100년 이상 가는 품격 있는 건축물을 원한다면 위대한 건축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고, 싸구려를 원하면 그 또한 발주자의 뜻대로 되니, 건설산업에서는 인과관계가 확실하다 하겠다.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주체는 바로 사람이며, 이들에게 적절한 권한과 책임, 보상을 제공하는 상생의 문화를 제공할 때 참여자들의 동기 부여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 발주자는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명품 발주자가 명품 건설을 만든다
건설이 갖는 다변성과 불확실성을 제대로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업종에 관계없이 설계든 시공이든 간에 그들에게 필요한 최적의 시스템과 프로젝트 관리 역량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같은 역량에 대한 고려 없이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게 사업을 맡기는 방식으로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발주자와 공급자는 협력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발주자는 ‘제값 주고 제대로 일시키기’를 주장하고, 공급자는 ‘제값 받고 제대로 일하기’를 실현할 때 비로소 윈윈하는 명품 건설 문화가 정착할 수 있다.
국제적 잣대를 놓고 볼 때 우리 건설산업의 질적 수준은 그간의 양적 성장에 비해 매우 낙후되어 있다. 산업 기반이나 국민들의 인식도 여전히 취약하다. 이처럼 건설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주자 리더십과 혁신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발주자가 바로서야 바람직한 건설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역사에서도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찬란한 건축 문화유산도 훌륭한 발주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명품 발주자가 명품 건설을 만든다”라는 경구는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가 될 것이다. 성공한 기업의 뒤안길에는 명품 CEO, 명품 리더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발주자가 해야 할 일
발주자는 프로젝트의 최종 의사 결정권자이며 자금 집행자이자 간설 프로젝트 전체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의 법칙을 정하는 리더이다. 리더란 무릇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사람이다. 건설의 발주자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문학 평론가이자 언론인인 홍수중 씨는 『리더와 보스』라는 책에서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흥미롭게 표현했다. “보스는 사람들을 몰고 가지만, 리더는 사람들을 이끌고 간다. 보스는 권위에 위존 하지만, 리더는 선의에 의존한다. 보스는 ‘가라’고 명령하지만, 리더는 ‘가자’고 권한다.” 이와 같은 잣대로 건설산업의 발주자를 바라본다면 발주자의 역할에 대한 그림이 조금은 명확해질 것 같다.
건설 사업의 성공과 실패의 열쇠는 발주자가 쥐고 있다. 프로젝트의 성공은 발주자의 목표에 대비하여 측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발주자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사업 비전과 프로젝트 수행 철학을 처음부터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프로젝트 참여자들에게 이해시키고 공유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하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훌륭한 발주자는 또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를 고용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며, 그들의 조언을 경청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발주자로서의 역할을 크게 다섯 가지 리더로 정의하고 있다. 자금 집행자로서의 리더, 의사 결정자로서의 리더, 건설 사업 전반부 운영자로서의 리더, 생산 과정 참여자로서의 리더, 그리고 게임의 법칙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주체로서의 리더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발주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발주자는 자금 집행자의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발주자는 건설의 최종 목적물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되도록 적은 비용으로 고품질의 목적물을 얻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발주자는 최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게 프로젝트를 맡기는 경향을 갖는다. 하지만 최저가 낙찰로 인해 발생한 비용 손실을 만회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결국 준공 시점의 최종 공사비는 입찰가를 크게 상회할 것이다. 최저가 입찰이 능사가 아님은 이미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입증되었다.
발주자들은 프로젝트 전 생애 주기 측면에서 사업을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다시 말해 생애 주기 비용 측면에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초기에 비용을 투자하더라도 건축물의 생애 주기 비용을 낮추는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주자의 주된 역할은 의사 결정자이다. 건설 프로젝트는 의사 결정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발주자가 직접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관리를 하지 않더라도 전문가 집단을 고용하여 프로젝트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의뢰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에 의해 프로젝트가 진행되더라도, 건설 프로젝트에서 최종 의사 결정권자는 바로 발주자이다. 발주자는 빠르고 정확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의사 결정의 지연과 번복을 최소화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팀 선정과 적절한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
건설 공사는 반복과 복제가 어렵고, 획일화된 서비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발주자의 요구 사항이 명확해야만 프로젝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뚜렷해지고, 프로젝트가 순항할 수 있다. 게임의 법칙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리더로서의 발주자가 불명확하고 애매모호하게 커뮤니케이션하거나, 요구 사항을 자주 변경할 경우 프로젝트가 원만히 진행될 수 없다. 사업 초기 발주자는 프로젝트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요구 사항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어떤 발주자가 프로젝트의 요구 사항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을까? 바로 스마트한 발주자가 제대로 된 요구를 할 수 있으며, 스마트한 건설 프로젝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발주자가 상생의 철학으로 명확한 요구 조건을 건설 참여자에게 요구하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이에 부응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그러나 발주자가 철학도 없이 수시로 요구 사항을 바꾸거나 상생의 중요성을 무시하면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리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느 쪽을 가리키느냐가 조직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전자 제품 하나를 살 때도 성능과 사양, 가격, 브랜드 인지도 등을 하나하나 따져서 오랜 시간 고민하여 제품을 구매한다. 전자 제품에 대한 지식이 없을 경우 스스로 공부하기도 하고 전문가들의 리뷰를 참고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 제품을 구매할 때에도 이러한데 하물며 건축물을 건설하는 과정은 얼마나 많은 지식과 전문성을 요구할까? 많게는 수백, 수천억 원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하는 건설 공사에서 스마트한 발주자를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은 건설이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발주자가 건설에 대한 모든 전문 지식을 확보하여 사업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관련 사업자를 관리하며, 모든 의사 결정에 참여하기는 어렵다. 건설 프로젝트를 처음 해보는 발주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건설 프로젝트 조직을 잘 구성하고 전문가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발주자가 꼭 해야 할 일이다.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관리를 담당하는 PM이나 CM뿐만 아니라 금융 전문가, 법률 전문가, IT 전문가, 환경 전문가까지 그 종류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발주자는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이슈와 관련하여 적임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