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의 함정

프리콘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누구든 일반적으로 싼 것을 선호한다. 싼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제품 종류에 따라 가성비가 최우선이 될 수 있으며,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물건은 가격을 기준으로 싼 것을 골라 사도 괜찮다. 저가 브랜드, 저가 상품 판매 업소가 성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건설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건설의 결과물은 한 번 지어지면 최소 50년, 100년 이상을 바라본다. 건설에서는 싼 게 비지떡인 경우가 정말 많다.

서울지방법원의 건설 관련 소송 사건이 의료 소송 사건 못지않게 압도적으로 많은 건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을 20여 년간 조사한 것은 건설 분쟁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점이다. 가장 흔한 유형이 싼 가격을 제시하는 건설업체에게 공사를 맡겼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였다. 계약 후 시공업체는 저가를 만회하고자 시공 중 설계 변경 등 각종 이유를 들어 공사비를 올리고 발주자는 잘 모르니 끌려갈 수밖에 없다. 추가로 여러 번 돈을 올렸으면 시공업체가 공사 기간을 준수하고 품질을 유지해줘야 마땅한데 그러지 못하니 발주자는 돈을 안 주겠다고 하고, 건설업체는 돈을 내놓으라는 소송이 대표적인 패턴이었다. 이아 반대로 의도적으로 돈을 안 주는 등 갑의 횡포를 일삼는 악덕 발주자도 간혹 있었다.

국내 건설 발주자들은 프로젝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싼 것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싼 게 비지떡이라 결과적으로는 공사비가 더 들어가고 공사 기간도 늘어나고 품질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모른다. 막연히 잘 되리라고 믿거나 잘만 관리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미국이나 영국 등은 이러한 저가 발주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미리 간파하여 어떻게 상생을 하면서 프로젝트의 가치를 확보할지에 대한 연구와 실증 프로젝트를 오래 전부터 해왔다. 이 같은 생각에 부응하는 대표적 방식으로, 최고 가치 방식(VFM, Value For Money의 발주가 있다. 이 방식의 대표적인 철학은 상생(win-win)이고 발주자와 프로젝트 관여자인 설계업체, 시공업체와 PM업체 등이 힘을 합쳐 프로젝트의 최고 가치를 실현시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는 철학이다. 그래서 그들은 싸다는 이유만으로 업체를 선정하지 않는다.

최고 가치 방식을 시행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이다. 벌써 20여 년 전부터 최저가 선정 금지 방침을 정부 조달 방식의 핵심으로 지정하고 감사원이 나서서 정부 발주자가 최저가 발주를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프로젝트 데이터를 통해서 나온 경험은 입찰가를 기준으로 싼 업체를 선정하면 결국 예산이 더 든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건설 혁신 기관인 CE(Construction Excellence)는, 최저가 방식이 결국 당초 예산을 초과하여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오히려 최고 가치 방식이 최저가 방식에서 추가되는 금액을 감안하면 예산 절감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데이터 기반으로 입증하였다. 공사비 절감이라는 개념도 당초 예산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각 프로젝트의 집행 평균치를 기준으로 하여 예산을 초과하여 추가된 금액에 대해 절감한 금액도 절감 금액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주요 건설 선진국이나 글로벌 기업에서는 설계나 PM/CM 용역을 가격 기준으로 선정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이들이 발주자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컨설턴트이기 때문이다. 왜 건설 선진국 글로벌 기업은 PM/CM 용역을 가격 연동하여 선정하거나 프로젝트마다 건건이 선정하지 않고 5년, 10년 동안의 장기적인 파트너 관계로 승격시켜 계약 관계를 맺을까? 이들 발주자들은 싼 것의 병폐를 알고 있으며, 좋은 회사, 좋은 팀, 좋은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낸다는 지극히 간단한 원리를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경영자, 책임자들은 눈앞의 숫자에만 급급하여 용역업체를 최저가 기준으로 선정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저지르는 인식상의 큰 실수는 동등한 조건의 비교 방식인 애플 투 애플(Apple to apple) 비교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인건비 차이가 매우 크고 인력의 질도 크게 차이 날 수 있다. 어떻게 휴대폰을 구매하면서, 삼성이나 애플의 고급 휴대폰을 중국의 저가 휴대폰과 나란히 가격만을 비교해서 사는가. 경영 컨설팅 업체를 선정하거나 법률 사무소를 선정하는 경우라면,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선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건설에서는 시공이든 용역이든 가격이 싼 업체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이 같은 배경에는 싼 곳을 선정하면 뒤탈이 없고 제일 편하다는 면피 의식도 한 축을 담당한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싼 게 비지떡이란 점을 깨우치는 한국의 발주자,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는 프로젝트보다 실패하는 프로젝트가 많은 이유는 이 같은 최저가의 함정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저가 업체 선정은 결국 좋은 팀 선정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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