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콘
국내 건설의 글로벌 스탠더드 필요성이 한동안 널리 회자되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국가나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 건설산업의 좌표는 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규제의 문제가 있는데, 300여 개가 넘는 건설 법령으로 인한 규제 사슬과 전근대적인 코리안 스탠더드가 그대로 있는 한, 성공적인 건설 프로젝트를 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국내 건설이 갖는 법적, 제도적 문제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들의 불공정한 행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충분한 역량을 갖추기도 전에 성장해버린 우리 경제는, 몸집은 커졌지만 업무 처리 방식과 시스템적 사고는 여전히 후진적인 면이 남아 있다.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인허가 과정에서는 불투명한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인허가 처리의 잦은 지연은 필연적으로 건설 사업 전체 과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거래의 불투명성과 부패는 우리 사회 전반에 여전히 만연해 있고, 그중에서도 건설 부문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인허가 처리를 비롯한 건설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정부 차원에서 정보 공개를 추진하고 있으나,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건설 프로젝트의 복잡한 입찰, 발주 제도와 변수가 많은 인허가 조건, 그리고 이를 시행하는 주체들의 불공정한 행태도 건설 프로젝트 성공의 걸림돌이다.
오래전 상공회의소 회장이 “우리나라는 골프장 하나 만드는데 실제로 필요한 도장 숫자가 780개나 필요한 나라”라고 꼬집었던 말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한동안 시중에 회자되었다. 당시 담당 부서 장관이었던 지인이 장관을 그만두고 몇 년 지나서 그때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도 도장이 780개의 진위가 무척 궁금해져서 직원에게 조사를 시켰더니, 실제로 필요한 도장 숫자가 780개를 넘어가더라며, 웃지 못 할 규제 현실을 실감했다고 했다. 이런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건설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중 하나이다. 무수한 규제의 벽을 넘기 위해서 허가권자와 이해 당사자 사이에 불건전한 관행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문제는 건설 프로젝트를 둘러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방생시킬 뿐만 아니라 건설산업의 구조 자체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건설 선진화와 사회 선진화에도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다수의 건설 프로젝트에 체계적인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기술과 시스템이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 대한 인식 또한 매우 부족하여 전문건설사업관리자(PM/CM)를 통해 프로젝트의 가치가 더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 건설 선진국에 비해 매우 뒤떨어져 있다. ‘공공 건설 사업 효율화’와 같은 이름이 붙은, 공공사업에 대한 정부 대책을 살펴보면 예산 낭비, 사업 기간 초과, 품질 저하에 대한 원론적인 수준의 원인 분석과 대안을 제시할 뿐, 정권이 바뀌면 몇 년 지나서 또다시 비슷한 내용의 ‘선진화 종합 대책’을 작성하곤 한다. 민간 공사의 경우 정확한 통계 자료조차 없어 프로젝트 부실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지만, 공공사업 못지않게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 그에 따른 결과로 건축이나 도시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건설의 품격은 선진국에 비해 확연히 낮아진다.
몇 가지 관점을 들어, 우리나라 건설 환경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