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은 프로젝트 성공의 전략이다
발주자의 니즈(Needs)와 발주방식의 진화
모든 건설프로젝트에서 발주자가 원하는 것은 훌륭한 디자인을 갖추고 더 빨리 더 싸게 공사를 완료하면서 최고의 품질을 확보하는 것일 게다. 이러한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고, 돈이 많은 발주자나 부족한 발주자, 초대형 프로젝트 이거나 아주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 공공이나 민간 등, 건설공사의 유형을 불문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바람을 달성하기 위해 고대로부터 수많은 기술자들이 개발되어왔는데 그러한 여러 수단 중 하나가 바로 건설공사를 진행하는 발주체계(Project Delivery System)이고, 이는 발주자의 요구에 따라 진행해왔다.
주요 발주방식의 태동과 역사적 배경
현대 건설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주체를 살펴보면 발주자를 위시하여 설계자와 시공자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집을 짓고 건설물을 축조하기 시작한 고대로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설계자와 시공자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았다. 특히 규모가 큰 건설공사에서는 많은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있는 ‘마스터 빌더(Master Builder)’가 전 과정을 주도했는데, 고대 이집트 조세르 왕의 계단 피라미드(Step Pyramid of Zoser, BC 2611)를 설계한 임호텝(Imhotep)이 최초의 마스터 빌더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의 판테온신전(Parthenon, BC 5C)을 설계하고 시공한 이크티노스(Ictinus)와 칼리트라테스(Callicrates)나 르네상스 시대 때에는 건축물의 시공에 관여하지 않고 설계만을 담당하는 ’건축가‘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탈리아의 알베르티(Leone Batteista Alberti)가 그 대표적인 인물로 이후 점차 설계와 시공의 전문영역이 분리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다 요즘 얘기하는 ‘발주체계’의 개념이 등장한 시점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부터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규모 기계생산이 가능하게 됐고 생산과정에서도 과학적, 실용적 지식들이 적용되면서 생산성은 크게 오르게 된다. 이 시대부터는 ‘건설물’의 유형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과거 대규모 건축물이라면 궁전이나 귀족들을 위한 저택이거나 종교적 시설물이 대부분이었지만, 상업 건축물이 등장하고 주거의 개념도 바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시설에 대한 요구도 급증하게 됐다. 철과 유리,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건설자재의 등장으로 경험적 지식에 의해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마스터 빌더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엔지니어링’이라는 새로운 전문영역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설계와 엔지니어링 영역은 더 분화되고 전문화되었고 시공영역은 전문 공종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요즘 용어로 치면,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의 분리와 세분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때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건설공사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설계·시공 분리방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고대 마스터 빌더 체제에서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는 데에는 무엇보다 기술적인 혁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자재와 새로운 기술을 새로운 유형의 건설물에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하길 원했던 발주자의 요구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느 나라도 이러한 발주체계를 법과 제도로 정해 시작하지 않았으며 다만, 이러한 체제를 규율하기 위한 법제도가 추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어느 시점인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970~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설계와 시공을 하나의 주체에게 맡겨 건설공사를 진행하는 ‘디자인 빌드(Design Build) 방식’이 미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적용되기 시작한다. 사실상 디자인 빌드 방식은 이전 시대에 있었던 마스터 빌더 방식과 그 개념을 같이하나, 그 시발점은 전혀 다르다. 설계와 시공의 주체가 분리되다보니 복잡한 건설공사일수록 통합적인 관리와 조정이 어렵게 되고 발주자를 포함한 3자간의 분쟁은 막대한 시간적,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따라서 발주자는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책임질 수 있는 주체와 계약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설계와 시공의 통합적인 관리기능을 전제로 이 방식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초기에 디자인 빌드 방식은 주로 반복적인 사업 형태에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발전소나 플랜트 등 고도의 기술적 설계와 엔지니어링을 요구하는 건설공사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고, 시장규모로도 전래적인 방식을 제외하곤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이 방식에서 변형되거나 범위를 확장시킨 개념으로 턴키(Turnkey), EPC (Engineering Procurement & Construction), 브리징(Bridging) 방식 등이 있으며, 시작은 민간부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공공부문에서도 일반적인 발주방식이 되었다.
디자인 빌더 방식보다 활성화된 시기는 조금 늦었다고 하나, 비슷한 무렵에 떠오른 새로운 발주방식의 하나가 바로 CM(Construction Management)이다. CM방식은 용역형태(CM for Fee)냐 시공까지 책임지는 방식(CM at Risk, 국내에서는 ‘시공책임형 건설사업관리’라 정의)이냐에 따라, 혹은 건설사업관리자가 수행하는 업무 범위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진화해왔다. 다만, 혹자들은 용역형 CM은 설계나 시공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발주자의 컨설턴트에 해당하므로 발주방식으로 보기 어렵다하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의 CM방식을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정의하거나 다른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어찌 됐든, 이 모든 방식을 포괄적으로 CM방식이라 지칭할 때(본고에서는 ‘CM’을 다양한 형태의 CM방식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함), 그 핵심은 설계이전 단계에서부터 설계, 시공, 유지관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공사의 효율적 운영을 주도하는 관리기능에 있다. 그리고 CM의 주체와는 상관없이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CM의 기능이 이집트의 피라미드(BC 2700년경)나 중국의 만리장성(BC 220년경)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였으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다. 또 현대적 CM 또는 PM(Project Management)의 효시가 된 사례로는 102층의 마천루를 불과 412일에 완성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을 꼽기도 한다.
발주방식 차원에서 본다면 1921년 뉴욕주에서 제정된 ‘Wicks 법안’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진다. 즉, 5만 달러 이상의 모든 공공공사에서 단일 원도급자를 배제하고 건축시공부분과 냉난방 및 공기조화(HVAC), 전기, 배관 등의 4개 공종을 각기 다른 시공자에게 발주하면서(다중시공계약; Multiple Prime Contracting) 오히려 발주자에게 비용 증가와 분쟁의 리스크가 돌아가게 되었고,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제3의 관리자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발주방식으로의 CM은 이후 민간부문에서 나타나는데,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Madision Square Garden, 1968)’과 시카고의 ’죤 행콕 센터(John Hancock Center, 1969)’, 덴버의 ‘죤 맨 빌 본부 건물(John Manville World Headquarters, 1972)’ 그리고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1973)’ 등이 대표적인 초기 적용 사례 들이다. 공사수행 전반에 걸쳐 발주자의 대행인(Agent)로서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사업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CM방식이 당시 대형 프로젝트의 출현과 효과적인 매니지먼트가 건설사업관리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발주자들의 인식이 맞물려 새로운 공사수행방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민간 부문에서 CM이 활성화되자 공공부문에서는 미국의 연방조달청(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 CSA)이 최초로 유사한 방식을 도입했는데, 처음에는 민간에서와 같이 다중시공계약 기반의 용역형 CM 체계를 적용했다가 후에 원도급자가 있는 상태에서 CM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공공이던 민간이던, CM방식의 도입에서부터 적용방식의 변화에는 발주자의 목표와 니즈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패스트랙(Fast-track)에 의한 공기단축이라든지, 효율적인 매니지먼트에 의한 비용 절감, 클레임과 분쟁의 사전관리 등이 발주자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이었고 이에 대한 효용성이 입증되면서 특히 민간부문에서 먼저 CM이 활성화 되는 결과를 낳았다.
국내 CM 발주방식의 도입과 오늘
해외와 국내에서 여러 발주방식이 도입된 계기를 비교해보면, 해외의 경우 발주자의 필요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시장에 도입돼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돼온 반면, 국내에서는 법과 제도로 선(先)도입되어 규정된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CM 방식도 예외는 아니어서 1996년 12월 ‘건설산업기본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처음으로 ‘건설사업관리(CM)’의 정의와 발주체계가 제도적으로 도입되었다. 이후 1997년 ‘건설기술관리법’에서 공공건설공사에 적용하는 용역형 CM 방식(CM for Fee)을 중심으로 한 세부 운영규정이 수립되었고, 바야흐로 CM 시장이 형성되게 되었다. 당시 CM 적용대상 공사는,
등으로 규정되었고(지금도 이 규정에는 변화가 없다). ‘시공책임형 건설사업관리(CM at Risk)’는 2011년에야 선언적이나마 건설산업기본법에 포함되게 된다.
그 후 CM은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2014년 건설기술관리법을 대체한 ‘건설기술진흥법’이 시행되면서 공공부문에서의 시행되었던 CM외의 ‘감리용역’이 모두 ‘건설사업관리’의 범위 안에 포함되어버린 것이다. ‘설계감리’, ‘시공감리’, ‘책임감리’ 등, CM의 업무영역에 포함되지만 별개의 제도로 운영되던 용역들이 하나의 틀 안에 통합되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논의되었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존 ‘책임감리’와 ‘CM’과의 차별성이 유지될 수 있는 가였다. 1994년 건설공사의 부실방지와 품질 향상을 목적으로 도입된 ‘책임감리’ 제도는 비록 시공단계에 국한되어있기는 하나, CM 도입이전에 이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책임감리의 목적이 공공건설공사의 발주청 공무원 즉, 공사감독관의 업무를 대행해 ‘감시’, ‘감독’의 의미가 컷다면 CM은 선제적 대응과 효율적인 관리로 프로젝트 성과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분명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을 제도적으로, 또는 법적 조문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발주자가 원하는 것이 건설공사의 품질 확보(책임감리제도)인지, 아니면 효율적 관리와 성과 향상(CM)이 목적인지에 혼돈이 올 수밖에 없고 결국 ‘감리수준의 대가에 더 많은 업무를 요구하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 가’, ‘CM의 전문성과 해외 경쟁력 향상에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의문이 남게 되었다.
∙설계·시공관리의 난이도가 높아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건설공사∙발주청의 기술인력이 부족하여 원활한 공사관리가 어려운 건설공사∙공항·철도·발전소·댐 또는 플랜트 등 대규모 복합공종의 건설공사∙그밖에 당해 건설공사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발주 청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건설공사 |
등으로 규정되었고(지금도 이 규정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