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은 프로젝트 성공의 전략이다
CM 전문가 인터뷰
▞ 국내 건설시장에서 CM이 도입된 지 20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CM에 대한 발주자들의 인식은 어떠한가? 발주자들이 CM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민간 발주자는 사업의 성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주어진 예산에 공기, 품질을 만족시키는 것이 절대적인 목표이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이 발주자 조직과 CM 조직이 각각 어떤 일을 맡아 수행하느냐이다. 이들 간의 할 일이 비교적 잘 구분되어있으면 CM업무는 정해진 업무 영역에 따라 설계, 시공 단계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발주자 조직의 구성원들은 주로 PM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갈등이 조금씩 좁혀지고, 시너지가 커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민간 발주자에게 사업관리 조직이 있으면서 그들의 역할과 CM의 역할이 겹치게 되면 오히려 CM을 꺼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본인들은 전문적이지 않지만 CM이 들어와서 자기네들이 할 일을 다 해버리면 오너 입장에서 이 조직이 필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줄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또 CM이 발주자의 대리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발주자 인력은 최소한만 있어도 되는데도 CM인력보다 더 많은 발주자 인력이 현장에 상주하는 경우도 있다.
▞ 전반적으로 보면 국내 민간발주자가 공공부문보다 CM의 전문성에 대한 니즈가 더 크다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경쟁 때문에 CM 용역의 품질이 떨어지지는 않는가?
▗ CM 시장에서도 과당경쟁으로 출혈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고 안타까운 문제다. 용역비가 낮아지면 그만큼 능력 있는 인력을 투입시키지 못하니 품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민간시장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상대적으로 용역비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여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용역비 범위 내에서 투입인력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고 사람 수 보다는 투입인력의 능력을 중요시한다. 그렇게 되면 같은 용역비에서도 양보다 질로 승부할 수 있다.
반면 공공의 경우에는 맨·먼스(man-month)가 정해져서 나오기 때문에 인력투입 규모는 경직되어있고, 그러다보니 투입인력의 단가를 낮추어 경쟁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실제 불필요한 인력을 투입하거나 단가가 낮은 저급인력을 투입하게 되는데, 그러면 CM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 국내 공공부문에서 용역비의 경직성을 논하자면, 내 경우 해외에서 전혀 상반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싱가포르 현장에 있을 때, 현장은 Architect CM 방식,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건축사사무소가 설계와 CM업무를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싱가포르는 영국식 제도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데 건축사에 많은 권한을 주고, 시공현장에서는 발주처를 대리한 최소한의 인력으로 CM 단장 1명과 검측원으로 건축 2명, 기계 1명, 전기 1명이 상주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엔지니어링적인 문제는 매주 열리는 현장회의에서 해결하는데, 여기는 발주처, 건축사, 보조건축사, QS(Quantity Surveyor), 디자이너, 구조, 기계전기 담당자, CM 단장과 시공사 현장소장, 공종별 담당자가 참석하고, 필요에 따라 참석자의 범위를 조절해 진행했다. 특이한 점은 CM이 아닌 QS 인력이 계약과 원가, 클레임 업무를 전담하고 있었으며, 현장 검측원은 기술자가 아닌 택시 운전사가 아르바이트로 참여할 정도로 단순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그들이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는 바로 용역비와 직결되는 문제이고 비용의 효율적 운영을 의미한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겠고, 제시한 사례는 CM이라기보다는 규모가 작은 감리 현장이었지만, 우리 시스템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법적인 규제 때문 엔지니어가 너무 많이 투입되고 정작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검측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발생한다.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어떤 인력이 얼마나 투입되어야 하는지 효율적인 운영방식이 필요한데, 국내의 법과 제도는 그런 점에서 매우 경직되어있다.
▞ 법과 제도에 의해 CM제도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면 CM사를 선정하거나 용역범위를 결정하는 일들에 일반적인 원칙이나 기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 법과 제도가 통제한다는 것은 그만큼 융통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매우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전체 사업의 발주체계, CM과 관련된 계약방식이나 내용, 업무 범위 등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선진시장에서는 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발주자가 CM을 참여시킬 것인가. 어떤 과업을 줄 것인가 등을 결정할 때 특이한 점 중 하나는 공청회를 많이 활용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공고를 내서 설계자, 시공자 등 업체사람들과 지역사회 주민들까지 불러 모은 다음, 토의와 질의, 답변을 통해 합의된 결론을 도출해 낸다.
한국은 대부분의 사항들을 정부가 대로 하는 분위기인데 반해 이 부분 만큼은 차이가 크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투명성이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불러서 이런 예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설명을 많이 하는데, 그만큼 사업 진행이 투명해진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으니 진행이 더딘 단점은 있지만, 결론이 나오고 나면 오히려 사업이 순조롭게 효율적으로 추진된다.
▞ 그래도 발주자가 CM의 필요성이나 어떤 기능과 역할이 중요한지,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를 먼저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해당 사업에서 어떤 전문성이 요구되는지를 판단하고 그런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CM을 고용하는 것은 발주자의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공청회를 통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면, 어떤 전문성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시작하는 발주자도 많다.
그런데 미국 시장에서는 특화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CM회사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발주자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사실 CM 회사라고는 하지만, 많은 회사들이 설계, 엔지니어링, 심지어 물류관리와 같은 생소한 전문성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어떨 때는 CM 용역인지, 엔지니어링 용역인지 헷갈리게 복합적으로 운영될 때도 있다. 이점은 한국의 CM 회사들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한국 제도에 의한 CM만으로는 다양한 발주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더 넓은 활동영역과 더 깊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 결국은 발주자가 원하는 것은 사업의 성공 아닌가, 그렇기 위해서는 CM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려면 발주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우선은 CM사에게 100% 권한과 신뢰를 줘야한다. 사실 발주자는 CM을 대리인으로 고용한 거니까 이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한국의 경우, 발주자가 건설사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한국의 건설사 중에 거대기업이 많다 보니, 그 영향력이 매우 크고 이 점이 오히려 CM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발주자 대리인으로서의 권한과 신뢰 문제는 발주자 내부 조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미국의 경우 CM사가 정해지면 발주처에는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직원이 2~3명밖에 없다. CM이 그들의 업무를 다 해주니까 발주자 내부 인력이 많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발주처 인력이 PM/CM 인력만큼이나 많은 경우도 종종 있다. 완전 돈 낭비다. 게다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책임을 지기 싫어서 CM을 방패처럼 세워놓는다는 느낌도 있다.
두 번째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런던올림픽 때 프로그램 사업관리(program management)에 참여했었는데 그 결과가 매우 성공적이어서 비용을 30%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애초 계약에서부터 비용 절감분은 발주자와 CM이 나누기로 했고, 이 절감분을 다시 CM사 직원과 발주자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나눠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너나할 것 없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CM의 역할이 컸지만 발주자 직원들에게 돌아간 인센티브도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큰 몫을 했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성공 사례가 있는 만큼 고려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