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은 프로젝트 성공의 전략이다
영국의 레이샴과 이건 경(卿)은 건설 산업에서 서비스 공급자의 서비스 수준이 주문자의 눈높이를 절대 넘어 서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비스 공급자는 굳이 발주자가 원하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CM 서비스에서도 예외일 수 없으며, 그렇다면 국내 CM 회사의 역량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문자(발주자)의 눈높이 파악이 먼저일 듯싶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몇 가지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국내 건설산업 주문자의 역량을 진단해보기로 한다.
제도에 가려진 발주자의 눈높이
앞서도 언급했지만, 국내 공공 및 민간 건설에서 사업관리는 이미 법과 제도 재정 이전부터 발주자의 필요성에 따라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었다. ‘건설사업관리’라는 용어가 제도적 틀 안으로 들어온 것은 1996년 해당 업무가 건설산업기본법(이하 건산법)에 포함되면서부터 이다. 이때부터 건설사업관리 용어에 대한 정의 및 대상 범위를 건설공사(건산법에서는 건설사업이라는 용어 대신 건설공사라는 용어 사용)의 생애주기로 규정하고 건설사업관리자가 수행해야 할 기능과 역할은 발주자 역할의 전부 또는 일부로 정의해 놓았다.
건산법의 해석만을 놓고 보면 발주자 기능과 역할이 곧 건설사업관리로 해석된다. 하지만 건설기술관리법(현행 건설기술진흥법, 이하 건진법)에서 건설사업관리의 기능과 역할을 구체적으로 정립하면서부터 건설사업관리자의 역할을 발주자의 고유 역할과 구분해 명시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건설사업관리자가 해야 할 업무는 구체화 됐지만 그 외에 수행해야 할 발주자 역할은 정확하게 규정된 바 없고, 그 틈새는 발주자가 간과하여 아무것도 수행하지 않거나, 건설사업관리자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 대가 산정 기준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CM에게 책임감리보다 더 많은 용역비를 제공하려다 보니 그 개념이 ‘책임감리+알파’라는 식으로 인식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건설사업관리자의 역할이 책임감리자의 역할을 단순 확장하는 개념으로 규정돼버린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책임감리제의 연장선에서 업무가 규정되다보니 CM 업무도 여전히 ‘검토 혹은 확인’에 중점을 두었으며, ‘계획 및 관리’ 부문은 여전히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즉, 건설사업의 승패는 검토·확인보다 계획·관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국내 건설사업관리는 법과 제도 정립단계에서부터 개선의 여지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일례로 공정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사업 및 공정계획 수립’이 우선인데, 공정관리를 ‘공정표 개발’이나 ‘공정 확인’으로 국한해 생각하는 것이 건진법의 시각이다.
머리(지식)가 빠지고 몸(기능)만 남겨져 있는 꼴이다. 사업 수행 전략 및 기획이 선행되어야 공정표를 개발 할 수 있는데 머리로 해야 할 역할이 공백 상태로 되어 버린 것이다.
‘계획·관리’는 사업에서 보면 앞 단계 업무에, ‘검토·확인’ 업무는 후방 업무에 속한다. ‘계획·관리’가 수행 주체 당사자인데 반해 ‘검토·확인’ 업무는 제3자 입장이다. 전문지식과 경험 차원에서 보면 ‘검토·확인’보다는 ‘계획·관리’에서 그 중요도가 훨씬 높은데, 여기서 국내 제도의 한계성이 드러난다. 이 업무에 대해 발주자가 직접 수행할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발주자 업무를 대행해줄 CM 회사에게 이 업무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CM 회사는 굳이 나서서 해당 업무를 수행할 필요도 없고, 그에 대한 역량을 개발할 필요도 없다.
제도와 관련해 발주자의 눈높이를 낮추는 또 다른 문제로, 법에서 요구하는 CM 회사의 평가기준을 들 수 있다. 즉, 건산법 혹은 건진법에서 요구하는 CM 회사 역량은 투입인력의 경험과 지식, 절차서 혹은 지침서, 절차서 기반 프로그램 등을 포함한 기업의 ‘CM 서비스 인프라 플랫폼’보다 ‘개인의 경험’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개인의 지식과 경험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업관리 역량보다 전통적인 생산기술(설계·엔지니어링 및 시공 등) 자격증 보유 여부에 의해 좌우된다. 건설사업관리 서비스에서 사업관리 전문성이 오히려 배제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CM 서비스 역량 구축이 곧 더 많은 기술자격자의 양적 확보라는 인식을 야기하고 결과적으로 국내 대부분의 CM 서비스 기업들이 사업관리전문가보다 기술자격자를 우대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생산기능과 생산기획 및 관리 기능의 차이가 무시된 구조다.
사례를 통해 본 발주자의 눈높이
• 사례A
이 사례는 2016년 6월에 입찰 공고된 철도공사와 연관된 예정가격 10억원 이하의 건설사업관리 용역을, 발주자가 기대하는 요구사항은 무엇보다 CM 회사의 전문성이었다. 하지만 그 요구사항과 실제 업무 간에는 많은 차이가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발주자가 공정관리에서 CM 서비스 제공자에게 요구하는 기대 수준은 공정관리 기법과 형태, 조직, 그리고 시공자가 제출하는 공정표에 대한 검토가 전부이다. 기법과 형태, 공정관리 조직도 시공자가 제출하는 공정표 검토 및 확인을 위한 역할에 그칠 뿐이었다. 공정관리기술(scheduling technique)만 요구했지 기획 혹은 계획(process planning) 전문성은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국내 대형 국책사업이나 국제 입찰에서 요구하는 공정관리 시스템 및 인프라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입찰안내서의 과업지시서에 명시된 입찰자의 요구 역량만으로는 전문성을 변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CM 회사는 건설사업관리 업무에 대한 당사자가 아니라 발주자와 시공계약자의 연결고리의 역할로만 한정되어 있는 셈이다. CM 서비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데 앞장서야 할 법과 제도적 조치 때문에 오히려 공공공사를 위해 CM 서비스 제공자가 역량을 별도로 갖춰야 할 명분을 찾기 어렵게 된 사례이다.
• 사례 B
이 사례는 2015년 9월에 착공된 공공공사 CM 서비스 용역으로 계약 금액이 90억원을 상회한다. 용역규모가 비교적 큰 사업이었지만, 계약서에 나타난 발주자의 요구 수준은 건진법에 명시된 CM의 기능과 역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헌데, 당 사업은 용역계약 시점과 공사 착공 간 2~3년간의 공백이 있었고, 실제 수행되는 대부분의 업무는 건진법에 기반을 둔 계약 내용과 비교할 때 일부에만 해당하거나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업 인·허가 지원, 설계와 시공 계획 및 간섭 조정 계획 수립 등 발주자의 일상적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계약서에 요구된 역할과 실제 수행 업무 간 상당한 거리가 존재하는 것은 법이 곧 계약으로 이해되는 국내 현실 때문이다. 따라서 CM 회사가 이해하는 발주자의 기대 수준도 법의 테두리 내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요구하는 CM 회사의 역량 및 전문성과 국내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보인다.
공공발주자 만족을 위해서는 CM 회사가 보유한 사업관리 전문지식이나 경험보다 발주자와의 경험과 관계가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버리는 결과다. CM 회사가 역량을 갖추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정부나 산업계의 기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발견되는 부분이다.
• 사례 C
국내 CM 시장에서 공공공사 수주액 규모로 10위 권 안에 있는 건축 설계 중심의 CM 기업은 자체 서비스 역량을 경쟁력과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곧 입찰경쟁의 핵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기업은 현장에 파견된 CM을 지원하기 위해 본사에서 표준화된 매뉴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매뉴얼은 건진법과 국토부에서 제시한 각종 지침서를 토대로 개발된 것이다.
또한 현장 및 계약조건에 따라 표준 매뉴얼을 사업단위로 편집하여 활용하는 체제를 갖추었으며 소속 직원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수단으로 자체 내 교육보다는 법에서 요구하는 연차교육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오고 있다. 해당 기업이 판단하는 CM과 책임감리의 차이는 계획 및 설계단계라 단언한다. 시공단계에 접어들면 책임감리와 CM서비스에 차이가 없다는 경험적 주장이다.
사업 초기에 계획 업무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대가와 무관하기 때문에 발주자에게 수동적으로 대응 할 수밖에 없음도 자인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느끼는 국내 CM 서비스 역량을 높여야 할 이유나 명분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시장 진출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전문지식을 높여야 하고 경험을 쌓아야 하며 CM 서비스 인프라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기업의 가장 큰 고민은 국내 CM 회사와 선진국 회사를 비교할 때 역량수준은 물론이고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 범위에도 분명 차이가 나지만, 역량을 강화하고 따라잡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 사례 D
도로와 철도 등 육상교통부문에서 국내 10위권 기업이 바라보는 CM 서비스 경쟁력에 대해서 해당 기업은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 진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이 기업이 판단하고 있는 CM의 경쟁력은 곧 국제입찰에 참여 할 수 있는 기반 역량이다. 특히 이 기업은 국제 입찰에서 요구하는 전문가를 국적 불문하고 동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데에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 입찰에 필요한 CM 혹은 PM 전문 인력은 지불 할 수 있는 자금 여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국제 입찰 참가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국내 CM실적은 해당 진출국의 대사간을 통해 공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별 다른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해당 기업이 진출하고자 하는 국가는 대부분 신흥국 시장으로 선진국에서 보는 잣대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해당기업은 미국이나 영국 등 전통적으로 CM 역량이 높은 국가군의 기업과 차이는 기술력보다 글로벌 언어(해당기업은 영어가 곧 글로벌 언어로 인식) 구사력에 있을 뿐이라 주장하며, 국내 CM 시장이 요구하는 CM 서비스 인프라는 갖추고 있지 않고 있는데 이는 국내 CM 시장은 매력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국내 CM 시장 진출을 위해 별도의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다만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 혹은 공공기관이 필요한 서비스 인프라 플랫폼을 제공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개별 기업이 별도로 서비스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는 너무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고 또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는 인유에서다. 해외 시장 진출은 국부로 돌아오기 때문에 정부가 R&D 예산을 투입하여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민간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 사례 E
다음은 플랜트엔지니어링 기반인 국내 엔지니어링 업체가 진단하는 역량 및 경쟁력 사례이다. 해당기업에서는 프로젝트의 수행 가능 여부를 CM사업의 역량을 판단하는 절대적 잣대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경쟁력의 기준은 입찰단계부터 프로젝트 수행 과정까지 발주자로부터 얻는 신뢰도라 인식하고 있으며, 서비스 인프라의 수준은 경험 자료 축적과 절차서 및 절차서에 있는 프로세스가 그대로 반영된 자체 SW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입찰참가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실적은 물론 발주자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서비스 플랫폼과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입찰경쟁력의 경우, 기술력에서는 경쟁업체들과 차이가 없지만 인건비에서 그들보다 불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어 해당기업의 인건비가 너무 높아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술 경쟁만으로 CM 회사를 선정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데, 실제 해당 기업은 2016년 7월 선진 기업들과 국제입찰(발주예정가격 약 2천5백억원) 경쟁에서 3개국(한국/영국/프랑스) 컨소시움을 구성하여 수주(30% 지분)에 성공한 바 있다. 발주기간에서 가격보다 해당 기업 및 컨소시움이 보유한 실적과 서비스 인프라 수준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약 기술력보다 가격이 주요 변수였다면 3개국 컨소시움이 낙찰자로 선정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해당 기업의 판단이다.
이외에 CM방식이 도입된 실제 공사 현장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실시해본 결과, 업체별로 공급자 역량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험이 많고 규모가 큰 CM 회사일수록 인프라나 시스템보다 사람의 경험과 지식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경험이 적은 신생 기업일수록 체계화된 매뉴얼과 같은 본사의 지원 시스템을 주된 역량으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 공통적으로 해외시장에서는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보다 사업 인프라와 본사 지원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업의 규모를 막론하고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을 비교할 때 발주자가 요구하는 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