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콘의 단계별 활동

프리콘

미국 CM협회인 CMAA에서는 프리콘 단계를 설계 이전 단계, 설계 단계와 발주 단계 3단계로 나누고 프리콘 활동별로 각 단계별 업무를 기술하고 있다.

“프리콘 활동은 프로젝트 생애주기 5단계 중 시공 전 단계인 설계 이전 단계, 설계 단계, 발주 단계에서 건설 프로젝트 수행과 시공을 준비하기 위한 활동을 말하며, 특히 원가, 일정, 품질에 관련된 제반 사항을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정립한 목표와 목적에 부합하도록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프리콘 단계의 첫 번째인 설계 이전 계획 단계, 즉 콘셉트(Concept) 단계에서는 예산과 일정 등 프로젝트의 중요 목표와 발주자 요구 사항이 정해진다. 초기 목표 설정은 도전적이면서도 실행 가능한 목표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프로젝트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과 프로젝트 수행 철학을 기반으로 한 실행 계획이 작성되어야 한다. 아울러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능력있는 조직과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고 도구와 시스템도 구축하여 프로젝트 수행 체제를 갖추도록 준비해야 한다.

프로젝트 관리에 대한 지식 체계 지침서인 PMBOK(Project Management Body of Knowledge)에서는 이 단계를 프로젝트 헌장(Project Charter)을 개발하는 단계라 규정하고 있다. 프로젝트 헌장은 프로젝트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콘셉트 단계는 프로젝트 관리의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다.

두 번째인 설계 단계는 완성도 높고 경쟁력 있는 설계 도면을 생산하는 단계이다. 프리콘 활동의 핵심인 디자인 매니지먼트(Design management)가 이 단계에서 수행되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기술적인 결정이 바로 이 단계에서 거의 모두 이루어진다. 전체 프로젝트에 90% 영향을 미치는 중요 의사 결정이 기획 단계와 설계 단계에서 결정된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의 빠르고 정확한 의사 결정은 프로젝트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비용 관리, 공정 관리, 품질 관리 등 각종 프로젝트 관리 사항이 설계도면 생산 작업과 연동되어 지속적인 VE와 시공성 검토가 이루어진다. 아울러 치밀한 견적을 통하여 프로젝트 원가 예산이 확정된다. 최근 해외에서는 목표 가치 설계(TVD, Target Value Design)와 린 기법이 일반화되어 있어, VE 활동 자체가 필요 없는 설계가 널리 진행되고 있다.

세 번째는 발주 단계로, 프로젝트 건설을 담당할 업체를 선정하는 입찰 및 계약 업무가 수행된다. 건설 공사 조달 방식은 수없이 다양하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협회인 PMI에서도 CMAA처럼 활동별로 프리콘 활동을 정의하고 있지만, 각 단계별로 해야 할 활동 리스트를 별도로 제시하고 있다. PMI에서는 건설 단계를, 초기단계(initiating process), 계획 단계(planning process), 실행 단계(executing process), 모니터링 및 통제 단계(monitoring & controlling process), 마무리 단계(closing process)로 나누고 있다.

주목할 만 한 점으로, PMI에서는 업체를 선정하는 발주를 실행 단계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설계 전 단계를 프로젝트 헌장을 개발하는 활동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프로젝트 헌장의 구체적인 내용은 프로젝트 요구 사항, 개요, 예산, 일정 등과 함께 프로젝트 목표와 성공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인적 자원 관리, 의사소통 관리, 이해관계자 관리와 프로젝트 범위 관리를 주요 활동으로 인식하고 있다. 건설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수행에는 인적 자원, 소통, 갈등 관리가 중요한 관리 포인트이다.

CMAA 분류 체계를 바탕으로 시간 순서대로 설계 전 단계, 설계 단계, 발주 단계로 나누어 보기 쉽게 재정리한 표를 참고하면, 각 단계별로 얼마나 많은 검토 작업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설계 단계는 물론이고 설계 전 단계(Pre-Design phase)에서도 프로젝트 관리, 원가 관리, 일정 관리, 품질 관리, 계약 행정, 안전 관리, 지속 가능성, BIM 등의 항목을 관리하게 되어 있다. 이어 각 항목별로 세부 항목이 기술되어 있다. 설계 단계에서는 이들 세부 항목이 이보다 더 늘어난다.

미국 등 건설 선진국에서는 프리콘 활동을 이렇게 섬세하게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부만 하고 검토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 전 단계, 설계 단계, 발주 단계를 지나 시공 단계에 들어가니 당초 계획에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프리콘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대충해서는 프로젝트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공 전 리허설이 성패를 결정짓는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적인 건설 공사 수행 방식은 설계는 설계사가 시공은 시공사가 각기 수행하는 설계 시공 분리 방식이었다. 최저가 입찰이 많이 쓰이는 설계 시공 분리 방식은, 발주자와 설계자, 그리고 발주자와 시공자 등 계약 당사자들 간에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계약 변경 요인이 발생할 경우 상호 간에 적대적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아울러 설계 변경과 같이 프로젝트 수행 중 발생하는 변경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노력이 일상화되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이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에 처할 경우 궁극적으로 프로젝트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정보 공유에도 극히 소극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문 시공 협력업체 A가 자신에게 할당된 공사에서 대안(VE 등)을 강구하여 프로젝트에 상당한 공사비 절감을 가져올 아이디어를 갖고 있더라도, 그 아이디를 실현하면 자사 이윤이 감소할 것이 명확할 경우에 이를 자발적으로 발주자와 공유하기는 어렵다. 특히 적자나 적자에 가까운 수주를 했을 경우 또는 프로젝트 수행 시 적자 공사가 인지되었을 경우라면, 어떻게라도 이를 만회하려는 것이 시공사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또한 설계자와 시공자 간의 협력과 협업이 계약상 원천 봉쇄되어 있는 구조이다 보니, 설계 단계에서 시공자의 경험과 지식의 공유나 협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공사에 참여할 시공자가 확정되기도 전에 설계안이 확정되기 때문에, 시공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시공 경험이나 노하우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 설계 도면을 가지고 시공에 임해야 하는 구조이다. 또한 국내에서는 공공 공사에서 특이하게 설계업체가 시공 중에 참여하지 못하는 법률적인 규제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설계와 시공 간 협업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시공 과정 중 끊임없는 설계 변경과 제작업이 반복되어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을 어렵게 한다.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설계 변경이 수천 건, 수만 건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시공업체를 포함한 프리콘 팀이 프로젝트에 조기 참여하여 프로젝트 설계 단계, 발주 단계에서 업무가 수행되면 시공 단계는 한층 수월해진다. 발주자가 PM을 고용할 경우에 통상적으로는 프리콘 활동을 PM업체에서 주도하여 수행하게 된다.

프리콘 활동을 건설 시공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 단계로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영화에서 고난도의 액션 신을 소화하기 위해 출연자들이 수십 번의 리허설을 해보고 나서 본 촬영에 돌입하듯이, 건설 프로젝트에서도 시공 이전 단계의 프리콘 활동에서 시공 과정을 수십 번 시뮬레이션하면서 시공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전 과정을 제대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성패가 결정된다. 즉 시공 전에 프로젝트 성패는 이미 결정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술한 대로 프리콘 단계에서 해야 할 업무가 생략된 채, 설계 도면에 프리콘 활동이 반영되지 않은, 완성도가 낮은 도면으로 시공에 들어간다. 이러한 현상은 발주 방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시공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며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상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일정과 원가 초과가 일상화되고 분쟁이 보편화되었다.

건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바로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 달려 있으며, 이 단계에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는 필수적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이다. “프리콘이 프로젝트 성패의 80~90%다”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결코 과장이 아님은, 가장 강조하여 밝히고자 하는 바이다.

건설 프로젝트 초기의 중요성은 맥킨지(McKinsey) 사례를 참고하여 다른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맥킨지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데, 이들이 10여년 전부터 건설 부문에 깊숙이 들어와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 건설 시장 규모가 연간 11.3조 달러(2019년 기준)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이다 보니, 맥킨지가 할 역할이 있다고 판단하고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가장 생산성이 낮고 변하지 않는 산업이 건설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분석한 제조업과 건설산업이 생산성 비교에서 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1995년에서 2014년까지 20년 동안 제조업은 생산성이 2배 가까이 증가한 반면에, 건설업은 거의 정체되어 있다.

맥킨지 측은 프로젝트 초기 대응과 디지털화, 자동화 등의 혁신으로 글로벌하게 1년에 약 2조 달러(약 2,400조 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건설 프로젝트 초기 대응과 프리콘을 잘하면 연간 2,400조 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이며, 건설에 그만큼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이에 관해 수많은 연구와 방법론을 담은 리포트를 홈페이지에 수록하고 있다. 건설산업 시장이 상당 부분은 맥킨지와 같은 컨설팅 업체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 외부의 타자에 의해 건설업이 개혁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건설 과정은 끊임없는 의사결정과정의 연속이며, 이를 어떻게 매니지먼트 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 성패가 결정된다. 건설은 설계와 시공을 넘어 프리콘이 핵심인 것이다. 건설 프로젝트의 속성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어떻게 서로 상생(win-win)하면서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는가에 있다고 할 때, 건설은 시공이 핵심이 아니고, 설계를 넘어 건설 전반의 모든 과정을 프로세스화하고 관리하는 ‘매니지먼트’가 핵심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전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여부에 따라 건설은 시공 전에 성패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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